바텐더가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쓰고, 도수가 강한 걸로 부탁드립니다. 바텐더는 두 가지를 말했고 지저스는 그 중 하나를 골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술이 그의 앞에 나왔다. 평소 마시던 와인보다 쓰고 뜨거운 맛이었다. 알싸한 맛이 입에 느껴졌다. 혀에 느껴진 쓴 맛에 지저스는 진저리쳤다. 부러 그는 잔에 입을 가져다댔다. 또다시 쓴 술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두어모금 마셨을 뿐인데 취기가 확 올라왔다. 그는 빠르게 첫잔을 비웠다. 두 번째 잔은 아까 추천해준 또 다른 술이었다. 이번에는 더욱 센지 마시기도 전에 알콜향이 먼저 코를 찔렀다. 두 번째는 좀 더 천천히 마셨다. 술은 매우 썼다. 두 잔을 마시고 나니 좀 더 마실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병째 주문했다. 한잔을 따르고 천천히 마시자 오히려 술이 깨는 기분이었다. 다시금 현실이 생각나며 기분이 나빠졌다. 술도 소용이 없다면 무엇을 해야 이 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주머니에 든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는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액정에는 ‘유다’ 라는 글씨가 떠올라있었다. 받을까 말까 고민이 되었다. 전화가 계속 울렸다. 웅웅 울리는 전화기를 보다 지저스는 화면을 밀었다.
“여보세요?”
「뭐해요?」
응, 술마셔. 라고 대답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가 아무 대답이 없자 유다가 다시금 물었다.
「여보세요?」
“듣고 있어.”
「뭐하냐고요.」
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취조하는 톤이었다. 분명 자신의 이상함을 감지했겠지.
「어디에요.」
곧이어 착 깔린 목소리가 그를 추궁했다. 지저스는 깊이 한숨을 쉬었다.
「어디냐고요.」
“술 마셔.”
이 상황에서 굳이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서로에게 익숙해졌지만, 익숙해지기까지의 싸움을 생각하면 싸움을 되풀이하는 짓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디서요.」
애인이 이런 목소리로 물을 땐 솔직하게 말하는 게 서로에게 편하다는 사실을 지저스는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애인은 집요했고, 그의 작은 방어에도 쉽게 상처받는 사람이었다.
“전에 너랑 갔던 바에서.”
「나도 술 마시고 싶었는데 잘됐네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가라앉아있었지만 말투는 다소 누그러진 투였다.
“퇴근하려고?”
「지금 해요. 얼마 안 걸릴거에요 기다려요.」
“그래.”
「이따 봐요.」
J에게 J가
ㅇㅈㅅ
A5/12p/1000원
ㅁㅎ기반 현대 AU
책상위에 놓인 우편물 중 유난히 눈에 띄는 봉투가 있었다. 조슈아는 봉투를 집어 들었다. 하얀 봉투는 지나치게 깔끔했다. 발신인의 주소는 적혀있지 않았고, 수신인의 주소는 이곳의 주소가 깔끔하게 프린트되어 있었다. 대체 누굴까. 요리조리 뜯어봐도 보낸 이를 짐작할 수 없어 조슈아는 봉투를 뜯어보기로 했다. 봉투 안에는 반듯하게 접힌 편지지가 들어있었다. 편지지를 펼치자 낯익은 필체가 나왔다. 그제야 조슈아는 피식 웃었다.
「내 사랑.
이 편지를 받고서 누가 보냈을까 궁금해 할 표정이 눈에 선하네요. 편지를 펼쳐보기 전까지 누군지 몰랐으면 좋겠어서 일부러 주소도 타이핑 했어요. 갑자기 왠 편지냐 싶죠? 그냥 보내봤어요. 가끔은 옛것이 낭만이 있잖아요.
우리 꽤 오래 얼굴을 보지 못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새로운 공연을 준비할 때나, 무대에 설 때 늘 설레긴 하지만 가끔 공연을 한다고 당신과 만나지 못할 때면 그냥 이 일을 그만둬버릴까 생각도 들어요.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벌었고 당신도 벌이가 괜찮으니 집에서 살림을 하는 일도 괜찮게 느껴지거든요. 분명 지금 당신이라면 내가 보고 싶으면 영상통화를 하면 되지 않냐고 대답할 것 같은데, 맞나요? 지금은 이천년 전과 달리 목소리가 듣고 싶으면 전화를 하면 되고, 얼굴을 보고 싶으면 영상통화도 할 수 있지만 당신이 내 곁에 존재하지 않음은 마찬가지라 나는 당신이 그립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쓸쓸해지기도 해요.
잘 지내고 있어요? 어디 아픈데는 없죠? 아까 통화했을 때 목소리는 건강해보였는데 편지가 도착하는 사이 어디 아프진 않을까 벌써 걱정이 되네요. 당신은 당신 자신보다 나를 먼저 걱정하고, 그래서 내가 신경쓸까봐 자기가 아픈 건 아무렇지 않게 숨겨버릴 사람이라 벌써 걱정이 되어요. 빨리 공연이 끝났으면 좋겠어요. 어서 당신의 곁으로 달려가 어디 아픈덴 없었는지, 나 없는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그동안 외롭진 않았는지. 당신을 품에 안고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동안 못다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당신의 손도 잡고 싶고, 키스도 하고싶고, 그보다 더한 것도 하고 싶어요.」
이 부분에서 조슈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공연히 부끄러워져 아무도 없는 방 안을 살폈다. 방 안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그는 다시 편지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늘도 당신은 아이들을 보고 있겠죠? 심각한 환자가 없었길 바라요. 이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당신은 아픈 이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으니까요. 아픈 이들에게 마음을 쓰다가 당신이 축날까 걱정이 되어요. 예나 지금이나 당신은 자기 아픔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더욱 아파하니까 그러다 자기 몸을 망칠까 걱정이 앞서요. 당신은 그러면 네 몸이나 잘 챙기라 하겠지만 당신이 다른 이들이 우선이니, 나라도 당신을 우선해야하지 않겠어요?」
구간
고백
ㅇㅈㅅ
A5/24p/2500원
ㅈㅈ기반 현대 AU, ㅈㅈㅅ ts
너는 나에게 시나브로 다가왔다.
너에 대한 최초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곳에는 어린 시절의 네가 있다. 헐렁한 티셔츠에 통이 넓은 반바지, 모래밭에 굴러 잔뜩 먼지가 묻은 모습으로 너는 웃고 있었다. 삐죽 나온 꽁지머리에 묻은 모래알들도 기억난다. 우리는 장난꾸러기였다. 우리가 함께라면 무서운 게 없었다. 정글짐, 철봉, 담벼락. 높은 데는 올랐고, 물이 있는 곳에는 뛰어 들어가 첨벙첨벙 장난을 쳤다. 어느 날은 네가, 어느 날은 내가 상대를 물속으로 밀었다. 어느 쪽이든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그 뒤로 복수가 이어졌다. 흠뻑 젖은 채 집에 돌아가던 길 우리는 자기 꼴은 생각하지 않고 서로의 모습을 보며 신나게 웃었었다. 정말 철모르던 시적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우리는 함께 온 동네를 쓸고 다녔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렸다. 너는 어디를 가도 사랑받는 아이였다. 많은 아이들은 나를 무서워하거나 어려워했지만 너에게는 달랐다. 너는 누구와도 친하게 지냈다. 사람들은 너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왔고 너를 좋아해줬다. 너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네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있어도 부럽지 않았다. 나는 그 애들이 싫었다. 그들이 너를 성가시게 구는 게 싫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할 때면 너는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손을 내미는 것이다.
“가자.”
나는 네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너는 내 손을 잡고 나를 무리 안으로 끌어들였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아이들 사이에 섞여 들어갔다. 사실 나는 아이들이 성가셨다. 그렇지만 네가 내미는 손을 거절할 수 없었다. 네가 날 신경 쓰게 만들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성가시다고 하더라도 너와 함께라면 괜찮았다. 그리고 내가 들어가서 너를 귀찮게 구는 아이들을 조금이나마 떼어낼 수 있다면야. 나 또한 인기가 있는 편이었어서 조금만 살갑게 굴어주면 아이들은 금방 나에게 몰려들었다. 나는 귀찮은 티를 내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지만 아마 너는 알고 있었을 거다. 내가 읽던 책을 잠시 바라보다 놓을 때면 너는 나를 보다 어깨를 툭 치며 고맙다. 하고 했었으니. 나는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나는 네 마음이 좋았다. 나를 생각해주는 다정함이 좋았다. 내가 운동을 좋아하지만 사람들에게 먼저 운동을 하자고 말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너는 알고 있었다. 만약 내가 정말 싫어했다면 너는 내게 손을 내밀지 않았겠지. 너는 내가 사람들과 섞이기 귀찮아 책만 보고 있다는 것을 나보다도 먼저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