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질 좋은 나무문이 나지막한 소리를 내었다. 허락을 구하기 위한 노크가 아니었기에 미츠루기는 바로 문을 열었다. "미안하다. 회의가 길어져서......" 거기까지만 말하고 미츠루기는 입을 닫았다. 쇼파에 누워있는 사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할 말을 입안으로 미츠루기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문이 소리없이 닫혔다. 살며시 문고리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미츠루기는 발소리를 죽여 쇼파로 다가갔다.구두를 벗고 쇼파의 손잡이 부분을 베게로 삼아 누운 그는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곤히 잠들어 있었다. 편한 수면을 위해 그의 상징인 파란 재킷도 벗어둔 채 제집인 것 마냥 쭉 뻗은 다리에 목양말이 빼꼼이 제 모습을 보였다. '그러고보니 오늘 재판이 있다고 그랬지.' 재판을 위해 며칠동안 이리뛰고 저리뛰고 헀을 테다. 피곤할 만도 하지. 미츠루기는 그리 생각하며 작게 웃었다. 재판이 끝나는 것과 회의가 끝나는 시간이 얼추 맞아떨어질 거라 생각해서 이곳으로 불렀건만, 아무래도 집에 가서 쉬라고 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를것 같았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아야겠다고 반성하며 미츠루기는 들고 온 파일을 들고 책상으로 다가갔다. 회의는 끝났고 결제가 필요한 서류들도 다 받아왔다. 한동안 이 사무실에 드나드는 이도 없을테니 그가 좀 잘 수 있도록 내버려둘 심산이었다. 그러나 그가 결제서류를 다 볼 동안에도 나루호도는 일어나지 않았다. 째깍째깍 흘러가써는 시간은 벌써 다섯시가 넘었다. 낮잠을 자기에는 늦은 시간이었고 무엇보다도 이제 슬슬 퇴근시간이 가까워져 오고있었다. 꽤 피곤했던 걸까. 도통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나루호도를 보며 미츠루기는 그를 깨우기 위해 나루호도에게로 다가갔다. 왠일로 뒤척거리지도 않고 잠이 든 모양인지 나루호도의 모습은 처음 그가 이 방에 들어왔을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한가지 다른 점이라면 해가 넘어가며 들어온 한줄기 석양이 그의 얼굴과 연하늘빛 조끼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미츠루기는 가만히 나루호도를 바라보았다. 구불거리는 눈썹과 커다란 눈,코,입. 25년 전이나 10년 전과 변함없는 얼굴이었다. 어쩜 그렇게 한결같은 모습으로 자랐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 성품도. 마찬가지였다. 미련스러울 만큼 올곧음마저도. 그때 마법처럼 나루호도가 반짝 눈을 떴다. 당연하게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먼저 웃은 쪽은 미츠루기었다. "많이 피곤했나보군. 꽤 오랫동안 잘 자더군." "기다리다 피곤해서 좀 잤어. 덕분에 푹 잤어." "덕분에 좋은 구경 했지." 나루호도가 웃었다.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크게 켠 그는 쇼파에 기대 나른한 표정으로 미츠루기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좋은 구경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들려줄 수 있어?"
대답 대신 미츠루기는 나루호도의 옆에 앉았다. 나루호도의 시선이 미츠루기를 따라 이동했다. 미츠루기의 얼굴이 나루호도에게로 향했다. 두사람간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다 입술이 포개졌다. 석양이 두 사람의 얼굴을 비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