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성실히 참가하다 보니까 제법 많아져서 정리해서 올려봅니다
어떻게 이럴수 있지. 이 많은 음표들을 이다지도 질서정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가?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싶지 않았다. 저기 서 있는 치기어린 청년이 나보다 낫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가요?”
청년의 물음에 겨우 대답하는 건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잃고 싶지 않아서였다. 도망치듯 극장을 빠져나오며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정교한 음표의 나열. 황홀한 아리아. 실력만큼이나 오만한 천재 청년. 이젠 필요없으니까요. 악보를 건네며 웃던 얼굴이 떠오르자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살아온 삶이었다. 아버지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음악을 계속했고, 재능을 알아봐준 스승이 있어 음악을 계속 할 수 있었다. 스물넷에 궁정 오페라 감독이 된 이후 그의 삶은 탄탄대로였다.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칭찬했고, 그를 천재라고 말해주었다. 그저 조용히 감사하다고만 했었지만 살리에리는 그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나타난 저 청년은 살리에리의 자만을 한 번에 박살내었다. 그의 음악은 잘 벼려진 칼과 같았다. 살리에리를 단숨에 찌르고, 그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에 살리에리는 숨이 막혔다.
어느 한구석도 그에 마음에 드는 곳이 없는 작자였다. 경박한 옷차림에 신성한 극장에서 연인과 사랑 놀음이나 하며 사람들을 기다리게 해 놓고, 프리마돈나에게 천박한 키스를 날리고 천상의 음을 연주한다.
과분한 재능이지. 살리에리가 생각했다. 재능이 잘못된 그릇에 담겼어.
그는 애써 상처를 부인한다. 그렇지만 상처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흐른다. 살리에리는 상처를 덮어버린다. 방치된 상처는 점점 곪아간다. 점점 썩어간다.
그가 상처에서 나는 악취를 맡은 건 한참 후의 일이었다. 모차르트는 추락했지. 그의 오페라에서 뭐라하더라? 낄낄거리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틈에서 살리에리는 자신의 악취를 맡았다. 그제야 그는 자신의 상처를 본다. 상처는 이미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살리에리는 자조했다.
“당신은 달을 닮았어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쳐다보았다. 모차르트가 말했다.
“당신은 조용하고 조심스럽죠. 생각을 알 듯 하다가도 모르죠. 늘 검은 옷을 걸치는 것도 같고요.”
“저는 제 옷차림이 좋습니다.”
“밤하늘보다 더욱 어둡죠. 밤하늘에는 별이라도 떠있으니까.”
모차르트가 깔깔 웃었다. 살리에리가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성질도 급하시긴요 마에스트로. 아직 말이 덜끝났어요. 아직 제일 중요한 말을 안했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게 뭡니까?”
살리에리의 말투는 정중했지만 미묘한 짜증이 담겨있었다. 내뱉고 나서 살리에리는 조금 후회를 했지만 모차르트가 눈치를 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의 쪽을 향해 고개를 들이밀었다. 거의 코끝이 닿을 정도로 거리가 좁혀졌다.
“마력이요.”
마치 무시무시한 음모를 말하는 투였다. 그러고는 뭐가 즐거운지 또다시 까르르 웃는 것이었다.
“달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죠.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온갖 마물들이 세상을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는 마에스트로도 익히 알고계시지
않나요?”
“대체 제 어디가 그런지 알 수 없군요.”
살리에리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다. 모차르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모르시는 건가요?”
“네.”
살리에리가 대답했다. 모차는 가만히 그를 보다가 살리에리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입술이 가볍게 부딪혔다 떨어졌다. 살리에리는 예의 무표정이었다.
“이런 매력이 있다는 거죠. 키스하고싶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잘못보셨군요.”
살리에리가 딱딱하게 내뱉었다. 화가 난 걸까. 모차르트는 불안해졌다. 이런 장난이 먹히지 않을 사람인데 괜히 한건가. 후회가 밀려왔다. 사과를 해야하나 고민하는 찰나에 살리에리의 손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 그 다음으로 느껴지는 감각은 입술에 닿아오는 까슬한 감각이었다. 살짝 빨아들이는 듯한 감각이 입술 전체를 훑고 지나갔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인지하기 전에 살리에리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그런 매력을 가진건 당신쪽입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그는 최근 빈을 시끄럽게 만든 요주의 인물이었다. 경박한 행동과 거침없는 말투는 시선을 끌기 충분했고, 환상적인 음악은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로젠베르크는 대체 그의 음악이 왜 좋은지 알 수가 없다고 투덜댔지만, 나는 그 역시도 모차르트의 음악에 매료되었다는 사실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신의 은총을 받은 아이. 그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음악은 아마데우스라는 이름에 걸맞는 음악이었다. 나는 그의 음악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하여 저 남자에게 저런 재능을 허락하셨나이까. 나는 신께 물었다. 그 사내는 어딜 봐도 신의 은총을 받기엔 부족한 성품이었다. 아니면 재능에 집중하느라 품성에는 투자하시지 않은 겁니까? 불경한 생각이었지만 이는 쉽게 가시지는 않았다.
나의 불경함을 신께서 눈치 채신 것이었을까. 얼마 후 황제께서는 내게 모차르트와 함께 곡을 쓰라는 명을 내리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명의 음악가가 더 있다는 사실이었다. 불편했지만 셋이라면 그럭저럭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작업을 시작하는 날이 다가올수록 나는 초조해졌다. 그럴수록 시간은 빨리 흘렀다. 드디어 작업이 시작되는 날이 되었다. 시종 아이는 모차르트가 도착했다고 전해왔다. 약속시간까지는 삼십분이 남아있었다. 나는 챔발로가 있는 방으로 안내해드리라고 말했다. 옷을 갈아입고 아래로 내려가자 챔발로 소리가 들렸다. 방으로 다가갈수록 소리는 커졌다. 몇 걸음 더 옮기자 챔발로를 연주하는 모습이 보였다.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음악이 손끝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나는 발소리를 죽여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문을 등지고 앉아있던 탓에 그는 나를 볼 수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나는 나의 등장으로 이 음악이 끊기길 바라지 않았다. 음악에 집중한 탓일까 그는 나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듯 했다. 덕분에 나는 이 청년이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그의 손은 제법 강단이 있었다. 건반을 누를 때의 손동작은 가벼웠으나 신중했다. 그는 자신에 차 있었으나 결코 모자라지는 않았다. 평소 경박한 행동은 찾아볼 수 없는 동작이었다. 의외였다. 그의 손이 마지막 건반을 눌렀다. 일관된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그는 뒤를 돌아 내게 인사했다.
“마에스트로 살리에리.”
그가 웃었다.
“제 음악은 어떠셨나요?”
나는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손을 만져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그렇지만 충동에 사로잡혀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훌륭한 연주였습니다.”
마음 속에 일렁이는 충동을 밀어넣으며 나는 그렇게 답했다.
“도와줘요 마에스트로!”
문을 박차고 들어온 모차르트가 대뜸 외쳤다. 서류를 검토하고 있던 살리에리는 뜬금없는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표정은 급박해 보였으나 모차르트는 별 것도 아닌 일로 호들갑을 떠는게 예사였기에 살리에리는 우선 의심부터 해보기로 했다.
“무슨 일입니까?”
“악상이 떠오르는데요!...”
모차르트가 팔을 위아래로 마구 흔들었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모차르트는 얼굴을 구기며 팔을 더욱 격렬하게 흔들었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행동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근데!... 도움이 필요해요!...”
“뭐가 말입니까?”
“안토니오 당신의 도움이요! 지금 당장!”
모차르트가 말했다. 살리에리는 뚱한 얼굴로 되물었다.
“모차르트 천천히 말하세요. 대체 무슨 도움이 필요하다는 겁니까?”
살리에리의 물음에 모차르트는 팔을 격렬히 흔들며 한마디를 뱉었다.
“저랑 춤을 춰주세요!”
“네?”
“왈츠 악상이 떠올랐는데 같이 춤을 출 사람이 없으니 진도가 나가지를 않아요. 그러니 마에스트로 저를 좀 도와주세요!”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의 손을 덥썩 잡았다. 음악과 관련된 볼일이 있을때 부르는 호칭은 관계가 변하고 나서도 변함이 없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살리에리를 끌고 방 한가운데로 데려갔다. 그가 반박할 틈도 없었다. 얼떨결에 끌려나온 살리에리는 당황스러웠지만 이미 모차르트는 모든 준비를 마친 다음이었다. 춤이라. 살리에리는 예전에 했던 왈츠 수업을 떠올렸다. 자신을 가르쳤던 선생님들의 난처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들은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었기에 그를 민망하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그의 춤 솜씨는 최소한의 염치가 있다면 민망해야할 솜씨였다. 그랬는데. 지금 내가 춤을 출 수 있을까. 아니 춤은 고사하고 발을 밟지 않을수는 있으려나. 살리에리는 의문이 들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저는 춤을 못 춥니다.”
“상관없어요. 제가 출 줄 아니까요.”
잡은 손을 위로 올린 모차르트가 빙긋 웃었다. 악상이 나오지 않는 고통은 그도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살리에리는 지금의 상황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모차르트의 입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가벼운 목소리로 시작된 음악이 조금씩 피어났다. 치맛자락이 봄바람에 나부끼는 듯 살랑살랑 시작된 음악은 조금씩 빨라져갔다. 하나, 둘, 셋, 턴. 살리에리의 조끼가 모차르트의 손짓에 맞춰 흔들렸다. 마치 숙녀의 치맛자락처럼.
...치맛자락처럼?
살리에리는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모차르트가 나쁜 파트너냐면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능숙하게 살리에리를 리드하고 있었다. 그럼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함은 대체 어디서 오는거지? 그렇지만 살리에리에게 생각은 사치였다. 아무리 춤을 못 추더라도 최소한 연인의 발을 밟지는 않아야지. 틈틈이 생각한 끝에 마침내 그는 이 이상함의 정체를 깨달았다.
“볼프강”
“네~”
모차르트가 대답했다. 그 와중에 단 하나의 음도 놓치지 않는 집중력은 가히 놀라울 정도였다.
“지금 제가 여자 파트인겁니까?”
“네에”
음이 담긴 대답이 돌아왔다. 부지런히 음을 읊으며 모차르트는 계속 몸을 움직였다. 하나 둘 셋 넷. 스텝 한번 꼬이지 않고 잘도 움직인다. 모차르트의 팔이 움직였다. 살리에리의 팔이 따라 움직이며 그의 몸이 빙그르 돌았다.
“볼프강.”
살리에리가 다시 한 번 모차르트를 불렀다. 이번 대답은 한 박자 늦었다.
“무슨 문제라도?”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태도에 살리에리는 할 말을 잃었다. 대답대신 그는 허리를 감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여전히 모차르트의 입에서는 음표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각오해두는 게 좋을 겁니다.”
음표를 가르고 까르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손에 몸을 맡겼다. 유예된 만큼 어떻게 보상을 받을지 궁리하며.
“나는 듀엣이 좋아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선율이 하나로 합쳐서 새로운 소리를 내는거 아름답지 않아요?”
어느 휴일, 연인이 뜬금없이 찾아와서 내뱉은 말에 살리에리는 조금 당황했다. 영감이 떠오를 때면 뜬금없는 말을 툭 던지는 행동은 익숙해졌지만, 가끔 이런 상황에서 뭐라 대답을 해야할지 모르겠는건 여전했다.
“악상이 떠올랐나요?”
무난한 물음을 던지자 모차르트가 신나게 대답했다.
“네! 아주 근사한 악상이 떠올랐어요. 들어봐요.”
그녀가 챔발로 앞으로 달려갔다. 흰 건반위로 손이 내달렸다. 살리에리는 가만히 연주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잠시 연주를 하나 싶더니 모차르트가 벌떡 일어섰다. 이번에는 살리에리의 책상으로 달려가 빈 오선지를 하나 집어들고 펜으로 악보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이러는 게 하루이틀 일도 아니었으므로 살리에리는 챔발로 의자에 앉아 모차르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제법 시간이 지난 후 모차르트가 살리에리를 불렀다.
“안토니오!”
모차르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악보를 들고 살리에리에게로 걸어왔다.
“자 받아요. 그리고 자리 좀 비켜줄래요?”
악보를 받아든 살리에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주에 방해가 되지 않게 두어걸음 물러났다. 모차르트는 건반을 눌렀다. 첫 음. 그리고 연이어 음표가 소리를 냈다.
“뭐해요? 부르지 않고?”
“네?”
“악보 봐봐요. 남자 파트라 마에스트로의 도움이 필요해요. 내가 낼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볼프강-”
“전에도 도와주셨잖아요. 한번만요, 네? 그럼 부탁해요!”
부탁이기에는 다소 막무가내였지만. 살리에리는 한숨을 쉬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약한쪽은 자신이었다. 살리에리는 악보를 보았다. 동글동글한 음표 아래 글자가 적혀있었다. 살리에리가 악보를 확인한 걸 본 모차르트는 건반을 눌렀다. 음표의 행진이 시작되었다. 뭐하는 짓인지. 제자들이나 하인들이 들을까 걱정이었다.
“넌 그의 모든 재능을 원하지. 장엄한 비상들. 커다란 반전들, 음악가가 지휘봉 아래에서 도전하는 것들.”
살리에리가 나직한 목소리로 노래했다. 다음 소절은 비어있었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난 성스러운 결혼식을 원해. 장밋빛 오페라의 분위기. 창공 속의 연인들 그리고 찬란함 속에서 겹쳐지는 합창소리.”
음이 멎었다. 살리에리는 의아했다.
“볼프강?”
“그래서 당신의 대답은요?”
“네?”
살리에리가 되물었다. 모차르트가 말했다.
“제 노래 들으셨잖아요.”
“네.”
“제 남은 시간동안 당신과 듀엣을 부르고 싶어요.”
모차르트가 말했다. 살리에리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모차르트를 쳐다보았다. 모차르트는 가만히 살리에리를 보다 깔깔 웃었다.
“이해 못했어요? 나 지금 당신한테 청혼한거에요. 당신과 결혼하고 싶다고요!”
의아한 얼굴이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으로 붉게 물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의 얼굴을 보며 깔깔 웃었다. 모차르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드레스 자락이 땅에 닿으며 사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모차르트가 말했다.
“마에스트로 살리에리, 내 인생의 마에스트로가 되어주지 않겠어요?”
그의 마지막 목소리를 기억한다.
"안토니오. 나는 레퀴엠을 완성시키지 못 할 것 같아요."
자조 섞인 목소리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병색이 완연한 얼굴에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모차르트. 그런 말 말아요. 나는 목소리를 떨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소용은 없었다. 아니에요. 그가 힘없이 웃었다. 나는 이미 틀렸어요. 가는 목소리는 놀랄 만큼 또렸했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초연함이 묻어나왔다. 옆에서 그의 아내가 뭐라 했지만 모차르트는 그녀를 내보냈다. 그녀는 울먹였지만 모차르트의 뜻을 꺾지는 못했다. 그녀가 나갔다. 나를 스쳐가는 싸늘한 시선이 아팠다. 곧 방 안에는 우리 둘만 남았다. 모차르트가 휘청거렸다. 그의 입에서 발작적인 기침이 터져 나왔다. 나는 급히 그를 부축했다. 손에 닿아오는 체온이 높았다. 나는 그를 침대에 눕히고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었다. 다행이 기침은 서서히 멎었다. 정적이 찾아왔다. 나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 걸까. 그를 파멸시킨 것도 모자라 내 이기심만으로 이곳에 왔다. 감히 용서를 빌고 싶었지만 마음에 쌓인 검은 죄악이 내 혀를 내리눌렀다. 욕망보다 죄악의 무게는 컸다.
"우리는 떠나죠. 기억이 어디로 사라져가는 지도 모른 채."
나는 고개를 들었다. 모차르트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돌려 감히 그의 시선을 마주하지 못했다. 차분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사라져가죠.“
모차르트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용서를 빌고 싶습니다.”
입술을 비집고 충동이 툭 튀어나왔다. 두려움이나 눈물.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야기가 끝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했다. 끝까지 나는 이기적이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죽어야 한다면 모든 것을 불태우면서 살아야해요. 나는 내 모든 것을 바쳐 기억하고, 기억시킬거에요."
“...”
모차르트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나는 주저했다. 나는 여전히 욕망했기에 나는 그의 손을 맞잡았다. 모차르트가 말했다.
“인간이기에 죽음이 필연이라면. 나는 묘비에 이렇게 새기고 싶어요. 나는, 우리는. 죽음을 비웃어왔다고.”
앙상한 손에 힘이 빠진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나는 조용히 그의 손을 놓았다. 나는 도망치듯 그의 집을 빠져나왔다. 며칠 후, 그의 시신이 공동묘지에 묻혔다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나는 침묵했다. 나는 그의 아내가 찾아와 나에게 악다구니를 쓰지 않을까 겁냈으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일은 없었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마에스트로. 나를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기 위해 나는 부단히 애를 썼다. 그는 죽었어. 이미 없어.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선명하게 나를 불렀다. 나를 질책하는 듯. 내게 애원하는 듯. 내게 장난치듯. 나를 사랑하는 듯. 마에스트로. 마에스트로? 마에스트로! 수천 번, 어쩌면 수만 번을 불렀는지도 모른다. 그는 쉴 새 없이 나를 불렀고 나는 끝내 목소리에 굴복하고야 말았다.
그래요. 나는 당신을 증오했습니다. 당신의 음악을 사랑했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나를 증오했고, 내가 뿌린 씨앗이 내가 사랑한 것들을 죽였습니다. 그래요 모차르트. 내 사랑.
“내가 당신을 죽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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