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에리는 생일에 의미를 두는 편은 아니었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다 보면 생일이 지닌 특별함은 시들해지기 마련이었고 그러다보면 여느 날과 마찬가지인 날이 되기 십상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그에게도 연인으로부터의 선물을 기대하는 조그마한 소망 정도는 있었다. 적어도 연인에게서 생일 축하한다는 소리 하나와 작은 케이크 정도는 기대해도 되지 않는가! 그러나 그의 기대는 보기 좋게 박살났다. 어젯밤, 급한 마감을 해야 되니 작업하러 가볼게요. 하고 사라진 뒤 연인은 하루 종일 연락이 없었다. 적어도 저녁이 되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까. 그러나 해가 서산으로 달려갈수록 기대가 자리하던 곳에 조금씩 실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마감을 상기시켜준 사람은 살리에리였기에 그는 자신의 행동을 조금 후회했다. 그렇지만 마감을 지키지 않으면 신뢰도 떨어질 터. 잘 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마음 한켠에 화가 끓는 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연인에게서 연락이 온 건 해가 완전히 떨어진 다음이었다. 이제야 마감이 끝났다며 괜찮으면 지금 집으로 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살리에리는 그러라고 했다. 이따 봐요. 전화가 끊겼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은 없었다. 잊어버린 건가. 그랬다 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었다. 몇 년간 사귀는 동안 생일을 까먹은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최근 그는 워낙 바빴고, 자기 생일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없으니까. 축하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받았으니까 괜찮다. 친구들부터 자주 다니던 가게에 이르기까지 축하한다는 문자를 보내왔으니 그걸로 되었지. 그리고 아직 시간이 남았다. 혹시 모르지. 직접 만나서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건넬지도 모르고. 그러나 그는 동시에 모차르트가 기억하지 못할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살리에리는 표정을 구겼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생각을 정정했다. 아니, 괜찮지 않다. 괜찮지 않지. 전후사정이 어쨌건 그는 하루 종일 모차르트의 연락을 기다렸다. 혹시 폰이 울리면 그게 그에게서 왔기를 바랐고, 그러지 않음에 실망했었다. 하루 내내!
만약에 그가 자신의 생일을 몰랐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직접 말한다면 그는 당연히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주겠지. 그러면서 몰랐다고 뭘 가지고 싶냐고 말할테다. 그래, 엎드려 절받기라도 그게 낫지. 섭섭하긴 하겠지만 무지와 바쁨은 그의 탓이 아니었다.
“생일축하해요 안토니오”
모차르트가 살리에리에게 와락 달려들었다. 볼에 진한 뽀뽀를 하고 떨어진 그는 손에 들고있던 케익 상자를 살리에리에게 건넸다.
“이건 선물. 보고 실망하기 없기에요!”
살리에리는 상자를 받아들었다. 제법 무게가 나갔다. 눈웃음치는 모차르트의 얼굴에 살리에리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하루종일 받았던 어떤 축하보다 기쁜 축하였다. 살리에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박스를 열었다. 그러나 상자 안에 기대했던 물건은 없었다. 살리에리는 박스안에 들어있는 통을 꺼냈다. 상자 안에는 과일 팩 몇 개와 초콜렛, 크림이 든 캔, 초 몇개가 덜렁 들어있었다. 살리에리가 물었다.
“이게 뭡니까?”
“어... 원래는 케이크를 직접 만드려고 재료까지 사 뒀는데 했는데 작업을 하다보니 시간이 늦어졌지 뭐에요. 급하게 사려고 해도 이미 가게 문도 다 닫았고. 그래서...”
모차르트가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케익이 되기로 했어요.”
“네?”
“마음대로, 취향대로 꾸며봐요. 오늘 당신 생일이잖아요? 생일 초도 준비했다고요! 그렇다고 몸에 구멍을 내고 꽂는건 안되지만. 아 맞아, 얼굴은 안돼요! 화장품도 같이 먹고싶은게 아니라면.”
살리에리는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모차르트는 그의 눈치를 살폈다. 설마 괘씸죄로 쫓겨나는 건가. 조마조마하게 살폈지만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게 다입니까?”
다지. 모차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살리에리가 그를 불렀다.
“볼프강.”
“네?”
치이익 소리와 함께 모차르트의 입술에 크림이 올라갔다. 어떻게 하기도 전에 살리에리의 입술이 겹쳐졌다. 입 안의 열기로 크림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달달한 단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겹쳐진 입술 새에서 참지 못한 웃음이 작게 새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