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아두니 꽤 많네요
간만에 꿈 없는 잠에 들었다.
살리에리는 눈을 떴다. 창문에서 햇빛이 길게 들어오고 있었다. 제법 늦잠을 잤나.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머리를 울리는 고통에 살리에리는 얼굴을 찌푸렸다. 종을 치듯 머리가 뎅뎅 울렸다.
“일어났어요?”
살리에리가 고개를 돌렸다. 옆을 보자 햇살과 닮은 노란 머리카락이 보였다. 살리에리가 말했다.
“모차르트?”
이름이 불리자 그는 살리에리를 보고 방글방글 웃었다.
“정신이 좀 들어요?”
아니 전혀. 살리에리는 생각을 삼켰다. 어젯밤 언제 침대에 누웠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당신이 절 눕힌건가요?”
“어디까지 기억해요?”
대답 대신 질문이 돌아왔다. 살리에리는 기억을 더듬었다. 어제 술을 마신 건 기억한다. 클라이언트 하나가 알 수 없는 피드백을 주며 수정을 요구했다. 그의 수정요청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몇 차례 수정을 요청했던 터라 또다시 돌아온 수정요청에 살리에리는 분통을 터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거였다. 한참 모국어로 욕을 하고 있는데 때마침 모차르트가 전화를 걸어왔고, 그는 답지 않게 전화기에 대고 울분을 터트렸다. 생각 외로 인내심을 가지고 그의 분노를 들어주던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에게 술을 마시지 않겠냐 제안했다. 평소라면 거절했겠지만 어제의 살리에리는 몹시 화가 난 상태였기에 제안의 수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차르트는 커다란 병 두개를 들고 왔다. 섞어 마시면 맛있어요. 모차르트가 잔을 건넸다. 노란색 액체가 찰랑였다. 살리에리는 살짝 홀짝였다. 코코넛 향이 나는 술은 생각보다 꽤 괜찮았다. 살리에리는 술을 들이켰다. 술이 들어가자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이야기가 나오며 술이 들어가는 속도도 점차 빨라졌다.
“당신이 주는 대로 술을 받아마시던 거요.”
“음...”
모차르트가 몸을 일으켰다. 이불이 부스럭거렸다.
“이래도요?”
모차르트가 장난스레 물었다. 살리에리는 당황했다. 이불 밖으로 나온 모차르트의 상반신은 실오라기 하나 없는 상태였다. 살리에리는 이불을 들췄다. 그리고 그는 경악했다. 이불속의 자신도 모차르트와 마찬가지인 상태였다. 아니 더 심했다. 그는 정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으므로.
“...제가 무슨 짓을 했습니까?”
급한대로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가린 후에 살리에리가 물었다. 모차르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 기억 안 나세요? 어젯밤에 그렇게 저를 괴롭혀놓고도요?”
살리에리의 얼굴이 붉어졌다.
“저는...”
살리에리가 입술을 잘근거렸다. 차라리 기억이라도 나면 사과라도 할 텐데.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술을 받아 마신 다음에 기억은 떠오르질 않았다.
“미안...합니다. 기억이 나질 않아요.”
살리에리가 고백했다.
“그게 정말이에요? 어젯밤 그런 짓을 하고도 기억하지 못한단 말이에요?”
모차르트가 놀란 얼굴이었다. 입술을 씹는 행동에 힘이 더 들어갔다. 진짜 무슨 짓을 한거지. 이제 그는 정말로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가 당신에게 어떤 위해라도 가했다면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싶습니다. 그러니 부디 걱정말고 제게 사실을 얘기해주세요. 술김의 실수라고 해서 용납되는 게 아니니까요.”
모차르트는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살리에리는 마음을 졸였다. 현 상황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매우 적었다. 입을 열기까지 몇십초의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당신이 실수를 했죠. 세상에 그렇게 술을 못하는 줄 몰랐어요. 술을 마시다 고개를 푹 숙이길래 걱정이 되어서 마에스트로에게 다가갔죠. 그랬더니 마에스트로는 절 붙잡고 가지 말라고 했죠. 그래서 아무데도 가지 않는다고 했죠. 술을 더 주니 받아마시더라고요. 그리고 한참 있다가... 그 일이 일어났죠. 당신은 비틀거리며 일어났어요. 화장실에 가겠다고. 그러다가 균형을 잃고 쓰러졌죠.”
“...”
“진짜 너무 놀랐어요. 당신이 그런 행동을 할 줄이야.”
“...미안합니다. 억지로 당신이 쉬워보여서 그런 건 아닙니다.”
“알아요. 마에스트로가 저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거요.”
모차르트가 대답했다. 살리에리는 고개를 숙였다.
“정말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치만 맹세코 당신을 쉽게 본 적은 없습니다.”
“무슨 소리 하시는거에요?”
모차르트가 물었다. 살리에리가 말했다.
“...제가 당신을... 덮...친거...아닌가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표정을 살폈다. 모차르트의 얼굴이 씰룩거리더니 곧 그의 입에서 박장대소가 터져나왔다.
“아하하 살리에리 당신, 지금 무슨 생각을 한거에요? 설마 우리 둘이 자기라도 했다고 생각한 거에요?”
그리고는 숨이 넘어가게 깔깔 웃었다. 살리에리는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 그는 상황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으니 모차르트는 또다시 웃기 시작했다. 살리에리는 어제 자신이 모차르트의 옷에 토했다는 진실을 들은 건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나서였다.
그날은 몸이 썩 좋지 않았다. 아침부터 머리가 묘하게 지끈거리며 열이 올랐지만 내게 주어진 일은 조금 열이 오른다고 해서 미뤄둘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오페라의 리허설에 참가하기, 폐하를 알현하고 진행 중인 오페라와 하명하신 곡들에 대한 진척상황을 보고하기. 일단 입궁을 한 후 폐하를 알현하고 리허설에 다녀오면 될 듯 했다. 다행이 폐하께서는 기분이 좋아 보이셨다. 하명하신 곡에 대한 진척상황을 보고하니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살리에리, 모차르트에게 조금 더 빨리 행진곡을 완성해줄 수 있나 물어봐주겠나?”
모든 걸 다 내려놓고 푹 쉬고 싶은데 이런 명령이라니.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궁정악장으로서 내 임무는 어디까지나 정해져있기 때문에 나는 “물론입니다 폐하.”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오페라 리허설은 나쁘지 않았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내가 입 델 부분은 없었다. 어쩌면 내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눈치 채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수고했다는 말을 남기고 극장을 빠져나왔다. 다행이 시끄러운 극장장과 마주치지 않았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나는 마차에 올랐다. 이제 마지막 볼일만 끝내면 집에가서 푹 쉴 예정이었다.
그러나 나의 행운은 극장에서 끝이 난 모양이다. 모차르트는 집에 없었다. 부인의 말로는 잠시 산책을 나갔으니 곧 돌아올 때가 되었다고 했다. 나는 방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조금만 기다리다 오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갈 심산이었다. 방문을 열자 뜻밖에도 달큰한 냄새가 났다. 모차르트에게서 이런 냄새가 났던가. 여인들에게서 나는 향과 비슷한 향이 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가 뿌리는 향수냄새였다. 지금 방 안에서 나는 향은 달달한 과일의 향이었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그리고 나는 방에서 나는 향기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아, 복숭아. 복숭아가 한창 날 계절이니 잔뜩 먹었을 지도 모르지. 나는 비틀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몸상태는 더욱 나빠지고 있었다. 머리에 열이 훅 올랐다. 피로가 누적된 탓일까. 차라리 지금 집으로 돌아갈까. 사고는 느렸다. 머리가 무거웠다. 그때, 문이 열렸다. 복숭아 향이 훅 끼쳤다. 내 의식은 아득한 저 너머로 떨어졌다.
“괜찮아요 마에스트로?”
한참 후에 나는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모차르트?”
나는 몸을 일으켰다. 내 몸 위로는 이불이 얌전히 덮여있었다.
모차르트의 얼굴에 걱정이 담겨있었다.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그 다음에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모차르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문을 열었는데 마에스트로께서 쓰러져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급하게 제 침대에 눕힌거에요. 한참을 있어도 깨어나지 않길래 의사를 불러야하나 하고 고민했는데 마에스트로가 움찔거리길래...”
“아...”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감사의 인사를 한 다음 기억이 없다는 것을 고백해야할지 아니면 그저 인사만 할 건지.
“고맙습니다. 아마 일시적인 증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나는 애매한 대답을 했다. 모차르트는 호들갑을 떨었다. 세상에 저는 마에스트로가 쓰러져있는걸 보고 설마 죽었나 했다니까요. 의사를 부르지 않아도 될까요? 유난스럽게 구는 모차르트를 만류한 다음 나는 폐하의 전언을 말했다. 모차르트는 이틀정도는 당길 수 있다고 말했고 나는 그렇게 전하기로 했다. 그리고 몸이 좋지 않으니 집으로 돌아가 쉬겠노라 말했다. 모차르트는 꼭 댁으로 돌아가셔서 의사를 불러 진찰을 받아보시는거에요. 하고 걱정했다. 나는 그러겠노라고 했다. 그러나 푹 잔 탓인지 몸 상태는 좋았고, 딱히 의사를 부를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아마 피로했나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모차르트는 창밖을 보았다. 살리에리를 태운 마차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웃음기가 지워진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모차르트는 비틀비틀 침대로 걸어갔다. 침대에 털썩 주저앉은 그는 코트를 벗어던지고 침대에 누웠다. 온 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짧은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베버부인이 마에스트로가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무슨 일로 온 건지 몰라도 모차르트는 신나서 계단을 올랐다. 방이 가까워질수록 익숙한 향이 느껴졌다. 그가 좋아하는 향이었다. 문을 열자 향은 후각을 마비시킬 정도로 훅 풍겨왔다. 그제서야 모차르트는 지금 상황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에스트로? 조심스럽게 호칭을 부르자 그는 모차르트를 끌어당겼다. 입술이 열리고 혀가 얽히는 순간에 모차르트는 혼란스러웠다. 살리에리와 달리 모차르트는 정신이 멀쩡했고, 지금 상황이 의미하는 바를 파악할 수 가 있었다.
러트.
오메가의 히트사이클과 마찬가지로 알파도 이성을 잃고 폭주하는 기간이 있다. 그걸 러트라 부른다고, 모차르트는 머리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살리에리를 밀어내고 정신을 차리라고 말해야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는 그러지 못했다고 하는 게 맞으리라. 오래도록 굶주려왔던 마음은 한 방울 보상이 떨어지자 허겁지겁 삼키기 급급했다. 그 순간 모차르트는 마음을 먹었다. 이걸로 되었다고.
기억하지 못할거란건 잘 알고있었다. 용케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건 어린시절부터의 생활 덕이었다. 아무것도 모른채 천진하게 웃는데엔 이골이 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거짓말을 하는 데에도. 모차르트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 손가락 사이가 축축하게 젖어갔다.
약속시간이 되었어도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약속을 어긴 적이 거의 없었던 사람이라 살리에리는 조금 걱정했다. 십분 이십분이야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삼십분이 넘어가자 살리에리는 초조해졌다. 혹시나 오는 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지금이라도 그의 집으로 시종을 보내 알아오라고 할까. 고민하던 차에 남자가 도착했다. 약속시간은 꽤나 지난 후였다.
“미안해요 마에스트로. 많이 늦었죠?”
숨을 헉헉 몰아쉬며 나타난 남자는 한눈에 봐도 허겁지겁 달려온 티가 났다. 일단 살리에리는 자리를 권했다. 붉게 상기된 두 볼은 생기를 품고 있었고, 머리에는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물 한잔 드릴까요?”
“네. 부탁...해요.”
살리에리는 시종을 불렀다. 손님을 위한 물을 가져다달라 말하자 시종은 알겠다고 대답했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보았다. 쉴 새 없이 오르내리던 가슴은 조금 진정되어보였으나, 여전히 얼굴은 붉었다. 살리에리는 그가 숨을 고르도록 잠시 기다렸다. 조금 후 시종이 물을 가져다 모차르트의 앞에 놓았다. 모차르트는 물을 받아 단숨에 마셨다. 고마워요. 씨익 웃는 미소가 빛이 났다. 살리에리는 따라 미소지었다.
“늦었군요. 걱정했습니다. 막 시종을 보내 당신께 기별을 보내려던 참이었어요.”
“미안해요 마에스트로. 백작부인의 댁에서 늦게 나왔거든요. 이것 때문에요.”
모차르트가 탁자 위로 손을 올렸다. 그의 손에 꽃다발이 들려있었다.
“장미군요.”
“백작부인의 정원에 피어있더라고요. 흐드러지게 핀 꽃송이가 예뻐서 백작부인께 괜찮으시다면 제게 몇 송이를 주실 수 있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흔쾌히 주시더라고요. 준비에 시간이 좀 걸렸지만요.”
모차르트가 손을 내밀었다. 살리에리는 멀뚱히 그를 보았다. 모차르트가 말했다.
“선물이에요. 장미를 보면서 마에스트로가 생각났거든요. 그래서 마에스트로께 드리고 싶었어요.”
살리에리는 시선을 내렸다. 탐스럽게 핀 꽃송이는 붉었다. 살리에리는 손을 움직여 꽃을 받으려 했다. 그러나 그가 손을 뻗자 모차르트는 다시 꽃을 거뒀다. 살리에리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모차르트는 웃었다.
“장미의 꽃말은 열렬한 사랑이래요. 마에스트로는 음악을 사랑하시잖아요. 전 알고 있어요. 마에스트로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모차르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살리에리에게로 조금 더 다가갔다. 살리에리의 시선이 그를 쫓았다. 모차르트는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저는 감히, 마에스트로 살리에리 당신에게 제 사랑을 바칩니다.”
그게 며칠 전의 일이었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가 준 꽃을 받아들었다. 대답은 그걸로 충분했다. 모차르트가 준 꽃은 화병에 꽂혀 그의 책상 한쪽에 자리했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변했다. 조금 더 친밀해졌으며, 조금 더 스스럼없어졌다. 이전에는 없던 햇살과도 같은 따스함이 그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그래서 그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짓을 해보기로 했다.
“이게 뭔가요 마에스트로?”
모차르트가 물었다. 살리에리가 대답했다.
“꽃다발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프리지아죠.”
모차르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살리에리를 보았다. 지난번 그에게서 꽃을 받을 때 내 표정도 저랬으려나. 살리에리는 조금 웃음이 나왔다. 살리에리는 꽃을 내밀었다. 모차르트는 꽃을 받았다. 살리에리를 보는 눈이 설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지난번 당신이 장미를 보고 제 생각이 났다면서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꽃을 보고있자니 당신 생각이 났습니다.”
별다른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얼굴이 왜 붉어질까. 살리에리는 헛기침을 했다. 새삼 모차르트의 행동에 감탄이 들었다.
“프리지아의 꽃말은 천진난만과 자기자랑이라 하더군요. 당신과 매우 닮았죠.”
살리에리는 잠시 말을 멈췄다.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청함 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당신 볼프강 모차르트에게 감히 사랑을 청합니다.”
방 안에 웃음이 만개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차르트가 웃음을 터트렸다. 들고 있는 꽃과 꼭 닮은 웃음이었다.
“마에스트로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아버지가 생각나요.”
어느 오후, 모차르트가 말했다. 그는 하프시코드를 연주하고 있었고, 그 앞에는 살리에리가 막 완성한 악보가 놓여있었다.
“내 음악이 당신 아버지와 닮았단 말입니까?”
“네.”
“어디가 닮았는지 말해줄 수 있습니까?”
“말해드리고 말고요.”
모차르트가 대답했다. 그 와중에도 그의 손은 부지런히 건반을 누르고 있었다.
“당신 음악은 체계적이고 견고하죠. 마치 성벽과도 같아요. 성 안에는 당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들이 있죠. 음악 체계들. 화성법, 대위법. 규칙들. 아버지도 그랬죠. 견고하고 무너지지 않을 당신의 규칙들. 저는 그 속에서 컸어요.”
“답답했겠군요.”
“아뇨.”
뜻밖의 대답이었다. 살리에리는 눈썹을 조금 까닥였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모차르트가 다시 물었다.
“의왼가봐요.”
“네. 저는 당신이 아버지를 답답하게 여기고 있는 줄 알았는데요.”
“아버지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많았죠. 특히 잘츠부르크에서 보낸 마지막 3년 동안은 더더욱요. 아버지와 이야기 할 때면 벽과 대화하는 기분이었어요. 아버지는 제게 순종을 요구했으니까요.”
“당신이 저의 그런 답답한 점을 싫어하는 것도 아버지와 닮아서인가요?”
살리에리가 물었다. 모차르트가 대답했다.
“아뇨, 라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죠. 그리고 당신이 중시하는 가치는 아버지가 중시하는 것과 같으니까요. 그치만 저는 당신을 비난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한 건 아니에요.”
모차르트가 손을 멈췄다. 음표가 사라진 자리에는 침묵이 존재했다.
“아버지는 제게 벽이셨어요. 벽은 제가 자라는 동안 저를 지켜줬어요. 벽이 없었다면 내 재능은 세상의 풍파에 쓸려 뿌리조차 내리지도 못했을 거에요. 아버지는 벽이 되어 저를 지켜주셨죠.”
모차르트가 살리에리를 바라보았다. 뜻밖의 말에 살리에리는 당황했다.
“그렇지만 저는 당신 아버지처럼 당신을 지켜주지 않습니다. 저는 아무런 힘도 없고.”
“당신도 제게 벽이에요. 마에스트로.”
이번에는 정말로 살리에리가 할 말이 없었다.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의 말을 잠시 기다리는 듯 살리에리를 봤지만, 곧 그가 할 말을 찾지 못한다는 점을 눈치챘다.
“당신과 아버지는 달라요. 아버지는 저를 지켜준 벽이라면 당신은 저를 이루는 벽이에요. 건물을 지을 때 벽이 없이는 지붕을 올릴 수 없죠. 마에스트로가 없다면 저라는 사람은 온전히 서 있기 힘들거에요.”
모차르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살리에리에게 다가갔다. 가볍게 입술이 맞닿았다. 그의 연인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모차르트는 웃었다. 알지 못하니 직접 말해줄 수 밖에.
“당신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기 때문에 나는 나로서 있을 수 있는거에요. 안토니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어 살리에리는 다시 입을 맞췄다. 모차르트의 팔이 그의 목에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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