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가에 선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택시 한 대가 남자의 손짓을 이해하고 그의 앞에 멈춰섰다. 남자는 택시에 올라탔다.
“-로 가주시오.”
내쉬는 숨결에 술냄새가 훅 풍겼다.
초인종이 울렸다. 티비를 끄고 막 자리에 누우려던 참이었던 나루호도는 초인종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시계를 봤을 때 열한시가 넘어 있었다. 이 시간에 벨을 누를 사람은 술에 취해 여기를 제 집으로 오인한 취객이나 십년지기를 훌쩍 넘긴 친구 야하리 정도였다.
딩동
또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두드리지 않는 걸 보면 야하린가.’
취객들의 공통점은 벨을 누르지 않고 문을 사정없이 두들기는 것이었다. 취하지 않은 상태의 야하리는 나루호도가 나올 때 까지 벨만 눌러대곤 했다. 나루호도가 소리쳤다.
“나간다, 나가!”
이 밤중에 또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일찍 잠들기는 글러먹은 듯 했다. 나루호도는 귀찮음에 투덜거리면서 현관으로 달려갔다. 문 앞에 놓여있는 구두에 대충 발을 집어넣고 나루호도가 잠금장치를 풀었다.
“이 시간에 또 무슨...”
기세 좋게 흘러나오던 나루호도의 말은 오래 가지 못했다. 문 밖에 서 있는 사람은 그의 예상을 후려치는 의외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루호도는 눈앞에 있는 남자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눈에 익은 색이었다. 비록 어둠에 가려져 본래의 빛을 잃었지만, 그 주인을 판단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루호도의 입에서 얼빠진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미츠루기?”
그 소리에 맞춰 거대한 붉은색이 나루호도를 덮쳤다. 나루호도는 문고리를 밀어젖히고 반사적으로 미츠루기를 받아들었다. 갑자기 쓰러지듯 자신에게 기대오는 성인 남성의 몸무게는 제아무리 같은 성인 남성이라 할지라도 감당하기 힘든 무게였다. 나루호도가 비틀거렸다. 곧이어 문의 반동이 미츠루기를 때렸다.
퍽
소리로 미뤄 짐작할 때 꽤 아팠을 텐데도 미츠루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루호도는 미츠루기의 등짝을 때렸다.
“야, 미츠루기.”
대답 대신 술 냄새가 훅 끼쳤다. 나루호도는 그가 아무 이유 없이 고주망태가 되도록 마실 놈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보아하니 회식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
아무래도 집으로 돌려보낼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판단하자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나루호도는 미츠루기를 현관 바닥에 내려놓았다. 신발을 벗겨 한쪽으로 밀어두고 나루호도는 다시 미츠루기를 안아들었다. 사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질질 끌었다는 쪽이 맞았지만. 여자도 아니고, 자기만한 성인 남성을 끌고 오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루호도가 미츠루기를 방 안에 끌고 들어왔을 때 그는 온 몸이 땀투성이가 되어있었다. 원래대로였으면 자신이 누웠어야 할 이불에 미츠루기를 던지다시피 내려놓고 나루호도는 한숨을 쉬었다. 이대로 방치해두고 싶었지만 누운 폼이 꽤 불편해보였다. 나루호도는 이불 위에 앉아 미츠루기를 불렀다.
“미츠루기.”
대답은 없었다. 그래, 인사불성인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하랴. 나루호도는 미츠루기의 몸을 옆으로 굴렸다. 나루호도는 미츠루기의 한쪽 팔을 재킷에서 빼냈다. 반대편 팔도 마찬가지었다. 양쪽 팔을 다 벗기는데 성공한 나루호도가 재킷 끄트머리를 잡아 빼냈다. 조끼가 남아있었지만 그래도 아까보다는 한결 편해보였다. 여기까지 한 나루호도가 또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방금의 작업은 현관 입구에서부터 안고(끌고)오던 것 보다는 수월한 일이었다.
...그나저나 이제는 어쩐다?
재킷은 벗었으니 이대로 재워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지만, 저렇게 자는게 편치는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잠옷으로 갈아입히자니 아까와 같은 노동을 반복해야했다.
“어쩌지...”
어쩔까 고민하는 사이, 갑자기 미츠루기가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났다. 나루호도가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미츠루기는 고개를 떨궜다.
“미츠루기?”
나루호도가 당황한 얼굴로 미츠루기를 불렀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설마 저 상태로 자려는 건가. 나루호도는 조심스럽게 미츠루기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나루호도가 미츠루기의 눈 앞에 손을 흔들었다. 미츠루기의 반응은 없었다. 진짜 이대로 잘 모양인가? 나루호도는 손을 움직였다. 슬그머니 앞머리를 걷어보자 반쯤 뜬 미츠루기의 눈이 보였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구름 낀 하늘마냥 흐릿했던 회색 눈이 차차 선명해졌다. 방금까지 술에 취해있었던 사람의 것으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선명해진 눈빛에 나루호도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여전히 시선은 이어진 채였다. 나루호도는 미츠루기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숨이 막히는 듯 했다. 나루호도는 짧게 숨을 삼켰다. 미츠루기가 입을 열었다.
“네가 왜... 여기 있지? ...꿈이라도 꾸고 있나?”
술에 취한 사람답게 매끄러운 말투는 아니었다. 나루호도는 맥이 탁 풀렸다.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였다. 그러자 이 상황의 어이없음에 대해 다시금 생각이 밀려오는 것이었다. 꿈이라니, 술에 취해서 이 시간에 집에 쳐들어온 게 누군데!
그러나 생각한대로 쏘아붙이기엔 영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잠시 깬 것처럼 보이지만, 비틀거리며 쓰러질 정도로 마신 놈이 십여분 남짓한 시간 만에 술이 깬다는건 어불성설이었다. 뭐라 대답해야할지 고민하는 사이 미츠루기가 말을 이었다.
“그 악몽이 아니라 네가 나오는 꿈이라 다행이군.”
그 순간 나루호도의 입이 딱 붙어버렸다.
그날, DL-6호의 진범을 밝혀낸 이후 더 이상 그가 그 꿈에 시달리는 일은 없을거라고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떨쳐내지 못했구나.”
“그래. 아직도... 매일 밤 비명을 듣는 일은 없어졌지만...”
그러고보니 지난번 난기류로 비행기가 흔들렸을 때 기절했다고 한 적이 있었다. 아직도 그 엘리베이터는 그에게 끔찍한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런 큰 트라우마가 진범을 밝혔다는 이유만으로 하루아침에 없어질 리가 없지. 나루호도가 작게 조소했다.
“하지만 이젠 그 숨통을 조이는 악몽이 내 발목을 잡을 순 없어.”
“......”
나루호도가 놀란 눈으로 미츠루기를 바라보았다. 미츠루기가 말했다.
“그 엘리베이터의 암흑이 나에게 두려움을 주진 못해.”
그의 말에 나루호도는 조금 쑥스러워졌다. 곧이어 느낀 감정은 딱 집어 말할수 없는 종류의 것들이었다. 이번에는 나루호도는 저도 모르게 미츠루기의 시선을 피할 수 밖에 없었다.
“왜인지 아나?”
미츠루기의 손이 나루호도의 볼에 닿았다. 술에 취해서일까, 양 볼을 감싸쥔 미츠루기의 손은 뜨거웠다. 미츠루기가 양 손으로 나루호도의 얼굴을 잡아당겼다. 강한 힘은 아니었지만 쭈그리고 앉아있던 탓에 나루호도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무릎이 이불 위에 닿았다. 둘 사이의 거리가 차츰 가까워졌다. 나루호도는 숨이 막혀왔다. 이제 입술이 닿을 만큼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미츠루기가 토해내듯 말했다.
“넌 나에게 너무나도 눈부신 존재다. 이렇게 마주할 수 있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미츠루기가 눈매를 휘었다. 평소의 날카로운 눈매의 어디에서 저런 표정이 숨어있었던가 의심될 정도로 부드러운 곡선이었다. 알싸한 술냄새가 훅 끼쳤다. 그의 숨결에서 묻어나오는 냄새였다. 나루호도는 정신이 멍해졌다.
저녀석의 저런 표정을 본 적이 있던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표정을 짓는 미츠루기의 얼굴은 눈부시게 빛났다. 그는 자신에게 눈부신 존재라 칭했지만 나루호도는 미츠루기에게 그 말을 돌려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단언컨대 미츠루기와 함께했던 시간 속에서 이렇게 눈부신 광경은 처음이었다.
“네가 내 곁에 서 있어주고, 함께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미츠루기의 손이 나루호도의 볼을 타고 스르륵 내려갔다. 나루호도가 아쉬움을 느끼는 찰나, 미츠루기의 팔이 나루호도를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몸이 밀착되었다.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뻣뻣하게 굳어있는 나루호도의 귓가에 미츠루기가 속삭였다.
“네가 그곳에 빛나고 있어서 내 악몽따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미츠루기는 나루호도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다시금 완벽한 정적이 찾아왔다. 나루호도가 자신이 들은 말을 제대로 인식하기까지엔 몇초의 시간이 걸렸다. 미츠루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제대로 인식한 나루호도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새빨개지는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곱씹을 것도 없었다.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낯이 부끄러워지는 말만 줄줄 들었다. 대체 뭐야 이 상황은! 이건 마치 프로포즈라도 받은 느낌이잖아!!
생각할수록 부끄러워지는 상황에 나루호도는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자신을 단단하게 안고있는 친구가 이를 허용해줄 리 만무했다. 일단 말로 해결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나루호도는 조심스럽게 친구를 불렀다.
“미츠루기?”
쪽팔림을 무릅쓰고 친구의 이름을 불러봤지만 대답은 없었다.
이런 말을 해놓고 그새 잠들었냐!
다행이라는 생각과 어쩐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교차했지만, 일단은 이놈을 바로 재우는 게 급선무였다. 이렇게 해서 잘 수 없는 노릇이잖나. 취한 와중에 얼마나 세게 끌어안았는지 미츠루기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미츠루기를 떼어 바로 눕힌 나루호도는 장롱에서 베게를 하나 더 꺼냈다. 불을 끄고 나루호도는 미츠루기의 옆에 누웠다. 나루호도는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았지만, 오라는 잠은 온데간데 없고 미츠루기의 웃는 표정만이 둥둥 떠다녔다. 나루호도는 한숨을 쉬며 베개를 빼 자신의 얼굴에 눌렀다. 그러자 이번에는 미츠루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루호도는 베개로 귀를 틀어막았다.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피했다.
젬마님의 썰을 보고 격침당해 쓴 글입니다.
미츠루기의 대사 하나하나와 감정선이 좋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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