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주인의 거침없는 성미를 반영하듯 규칙적이나 다소 빠른 소리였다. 성큼성큼 당당하게 걸어가던 여성은 복도 끝 어느 문 앞에서 멈춰섰다. 그녀는 손가락을 가볍게 말아쥐고 볼록하게 튀어나온 부분으로 문을 두 번 두드렸다. 그리고는 기세 좋게 문을 열어제꼈다. 방금 전의 노크만 없었다면 제 방에 들어가는 것으로 착각할 모양새였다. 방 안쪽, 책상에 앉아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남자가 뭐라 말하기 전에 여자가 먼저 선수를 쳤다.
“오랜만이야 미츠루기 레이지.”
“메이?”
“뭐야 그 얼빠진 표정은.”
메이가 피식 웃었다. 갑작스러운 인사발령이 가져다준 뜻밖의 수확이었다.
“자.”
미츠루기가 찻잔을 내놓았다. 메이는 미츠루기가 내려놓은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나쁘지 않은 맛이었다. 예쁜 수색과 베르가못 향이 기분을 한층 돋구어주었다. 메이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맞은편에 있는 미츠루기의 잔을 보자 자신보다 짙은 붉은빛을 띤 홍차가 눈에 들어왔다. 예전과 다름없는 취향이었다.
“여전하네 그 취향은.”
오래전부터 그는 향이 강한 홍차는 맞지 않는다며 기본적인 향의 홍차만 마셨었다. 꽃 가향을 좋아하던 메이는 홍차의 향을 모른다며 미츠루기를 구박했었다. 미츠루기는 메이의 말에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취향을 고수했다.
“너도 여전하군.”
미츠루기가 말했다. 메이는 살짝 웃으며 찻잔을 들었다. 이제는 이런 취향을 문제로 구박할 나이는 지났다. 미츠루기가 물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아시아 지부에서 근무할 예정이라고?”
“응. 이쪽도 밀수나 마약 문제가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까.”
찻잔을 내려놓고 메이가 다리를 바꿔 꼬았다.
“그리고 슬슬... 결혼도 생각할 나이니까.”
뜻밖의 말에 미츠루기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만나는 사람이라도 생긴건가?”
“왜? 내가 연애를 못할거라고 생각했나봐?”
“바빴지 않나. 그와중에 연애할 짬이 났다는게 신기해서.”
“흥.”
메이가 코웃음을 쳤다. 한쪽 입꼬리를 가볍게 올린 그녀가 입을 열었다.
“네 말 대로야. 바빠서 못했어. 상대는 이제부터 찾으면 돼.”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도 있는 모양이군.”
“있다마다.”
메이가 꼬았던 다리를 풀었다. 그녀는 오만한 표정으로 턱을 치켜들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제부터 내 질문에 답해. 미츠루기 레이지. 넌 다른여자와 비교해서 내가 빠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갑자기 그건 왜 묻나.”
“묻는 말에나 대답해.”
메이가 미츠루기를 노려봤다. 미츠루기가 대답했다.
“아니.”
“그럼, 연애대상으로 나는 어때?”
“뭐?”
메이의 말뜻을 인지한 미츠루기는 눈에 띄게 당황한 얼굴이었다. 메이가 얼굴을 찌푸렸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취미는 없어.”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서로가 서로를 쳐다보았다. 치열하게 서로를 탐색하는 와중에 미츠루기는 메이의 귀 끝이 붉어진 것을 발견했다. 그러자 갑자기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비웃지마 미츠루기 레이지!”
메이가 한층 사나운 얼굴로 미츠루기를 노려봤다. 미츠루기는 묵묵히 그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그럼 나도 묻지. 지금 이거 고백이라고 간주해도 되는 건가?”
메이의 귀 끝에 머물러있던 붉은 기운이 얼굴 전체로 퍼지는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츠루기의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갔다. 부끄러운 와중에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던 메이가 미츠루기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확인하고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티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그녀는 지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메이.”
“왜.”
미츠루기의 말에 메이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 모습에 미츠루기가 작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메이가 발끈했다.
“사람을 불렀으면 말을 해!”
“갑작스럽지만 나랑 정식으로 교제해주지 않겠나?”
미츠루기가 메이를 바라봤다. 메이의 얼굴이 불타는 것 마냥 한층 더 진한 빨강으로 바뀌었다. 미츠루기가 한마디 더 덧붙였다.
“이왕이면 결혼을 전제로 나와 교제해다오.”
미츠루기는 진중한 눈빛이었다. 메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푸른 빛이 도는 머리카락이 커튼처럼 드리워졌다. 침묵이 흘렀다. 미츠루기는 말없이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반칙이야!”
메이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얼굴에 도는 붉은 빛이 아까보다 옅어져있었다. 미츠루기가 물었다.
“뭐가 말인가?”
“고백은 내가 하고싶었단 말이다! 그걸, 이런식으로 채어가?”
메이가 사나운 얼굴로 미츠루기를 노려보았다. 미츠루기가 빙긋 웃었다.
“나름대로 네 마음을 고려해서 한 행동이었다. 대다수의 여자는 남자쪽에서 듣는 편을 선호한다고 알고있어서.”
“흥, 괜한 짓을.”
메이가 삐딱한 투로 말했다. 미츠루기가 말했다.
“아무렴 어떤가. 그보다 대답은?”
“...좋아.”
메이가 대답했다. 여전히 시선은 피한 채였다. 미츠루기의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퍼져나갔다. 메이의 얼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햇살이 따사로운 오후였다.
루온님께 드리는 미츠메이입니다. 처음 써본 및메라서 제가 두사람을 잘 살렸을까 걱정이 되네요.
26메이와 34 루기는 좀 더 성숙한 느낌이였어요. 메이는 좀 덜 츤츤대고 근거있는 자신만만과 당당함이 매력일것 같고, 34루기도 자신이 가는 길에 확신을 가지고 좀 더 여유로운 모습일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그런 면을 묘사하고 싶었습니다!